1. 마더 텅 (2024)
2. 시립 미술관에서 (2024)
3. 다큐멘터리 한 편과 관객과의 대화 (2024)
4. 덩굴 (2024)
5. 활
6. 은근
7. 삼대(三代)
Short Index for My Poetry Collection
마더 텅
Mother tongue
윤종환
낡은 세계의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처음에는 생이
다음에는 죽음이 바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분배될 것이다
- 루이 아라공
1 .
어느 시인이
내 영어 발음이 원어민 발음 같다고 했다
첫 영어 교사는
공립 초등학교에 다닐 적 만난
싸이뱅
혀가 말려 들어간다
부여잡을 나무 기둥 하나 우연히 발견한
물에 떠내려가던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살아남아
물에 빠진 공포를 두려워하다
그것은 공포가 아니라 기억이며
어떤 자세로든 수영하는 그날까지
설근에서부터 미끄러져 나간
혀끝소리까지
수심과 대결했다
승리는 없어도 기억이 다른 언어를 만들었을 것
혀의 생존 근육
그것이 나의 발음이다
2.
누구도
발음 앞에서 현실주의자가 될 수 없다
혀를 가지고 있다
누구든과 우노UNO 게임을 할 정도로 충분한
영어를 사용할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훔치고 있는 나를 보았다
3.
싸이뱅과 코엑스에 놀러가려고
지하철에 탔다
그가 물었다
WHAT DO YOU WANT TO BE WHEN YOU GROW UP?
나는 내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열한 살의 너는
사람과 대화할 때 상대의 눈을 마주 보기를 일찍부터 알았고
네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눈동자와
그 미세한 떨림으로부터 너는,
세계의 법을 느꼈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공학적으로 설계된 지도를 떠올렸다
이미 알아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발음에도 국경이 있고
어떤 어린이들에겐
일찌감치 입국허가서가 요청되기도 한다고
순간 좌절하고야 만다
하지만 좌절을 좌절로 발음하는 일은 없을 것
좌절에는 기만이 있다
IT IS TURE: YOU CANNOT GO TO HARVARD
발음은 충분하다
설근으로부터 언어가 분배될 것이다
4.
아무도 내게 라오스인으로부터 언어를 배웠느냐 묻지 않는다
당신들의 언어 교사가 궁금하지 않다
계간 『시사사』2024년 봄호
시립 미술관에서
윤종환
명품백을 맨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림 앞에 서 있다
슬그머니 옆에 서 물었다
이건, 진품인가요?
백화점에서 산 거예요
이 그림은 타인에 대한 믿음과 현대사회의 불신을 보여주는 것 같군요
두 번의 설명 끝에
그의 이 하나가 떨어진다
,
이건,
라미네이트네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예술이군요
당신은 내게 명품 가방을 맡기고 잠깐,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나요
이 가방에는 아직 동물 가죽이 쓰이지만
여전히 값어치를 하죠
잠깐, 비어있는 듯한 그
이의 공간
그이는 유려히 말한다: 작품에 관하여
심각한 표정에 관하여
무리해 설명하지 마세요
실례지만 말씀에서 발음이 샙니다
게다가 저는
모릅니다
서로에 조금 오래 곁눈질했다
그는 이를 건네받았다
당신 , 예술이군요
계간 『시사사』2024년 봄호
다큐멘터리 한 편과 관객과의 대화
윤종환
1.
치명적인 독을 가진
개미 같이 생긴 벌 개미벌
제 새끼에 싱싱한 바퀴벌레를 먹이려고
제 몸보다 수십 배는 큰 바퀴를
두 시간 동안 쫓아다녀
끝내 독을 찔러넣는다
한 번 더 깊이 들여놓는다
마비된 바퀴는
도망을 생각해도 도망가지 못하고
어디론가 다리를 뻗는다
어디로든 뻗는다
개미벌은 살아있는 바퀴를 싱싱 끌고간다
산 채로 끌려간다
개미벌은 싱싱한 바퀴를 집으로 데려 온다
들여온다
새끼 유충은 태어나자마자
바퀴 속살에 주둥이를 찔러넣는다
한 번 더 깊이 찔러넣는다
싱싱한 육즙을 빨아먹고
한 마리의 본능을 물려받으며
바퀴는 산 채로 빨리고
산 채로 먹힌다
삶을 삶으로 완수하듯
싱싱하게
죽음은 산 채로 또 죽음은
죽은 채로
애벌레는 육즙을 빨아 먹고 남은
바퀴의 껍데기 속으로
파고 든다
한 번 더 깊이 들어간다
실을 뽑아 제 몸을 감싼다
싱싱한 무덤
싱싱한 새 집
부모를 최선으로 닮는 데로
최대를 물려받는 데로
본능 본능 싱싱한 본능
바퀴는 죽은 채로 산 것이 된다
남의 새끼를 품고
탈피를 꿈꾸는 개미벌
최선을 다하여
고도의 몸짓으로
2.
과일을 따 먹는 동물
열매는 나무에서
산 채로 떨어진다
싱싱한 과육
껍질은 죽은 채로
씨앗은 산 채로
발악하는 중
3.
수산시장 얼음판 위에 놓여
있는 생선
들여온 지 얼마 안 돼
싱싱하다는 약속
회 쳐 놓은 접시
무거운 복잡에서
더 무거운 단순함으로
살을 파고드는 회충 같이
산 채로
눈동자 움직이는 소리
떨리는 꼬리
4.
싱싱한 레몬즙 : 다른 모든 것을 싱싱케 하라
5.
때 묻은 입술과 시뻘건 혀
산 채로 산 채로
질질 끌려 가는 역사와 질질 끌고 가는 역사
싱싱한 뇌는 그 경계를 알 수 없다
펄떡이는 뇌를
죽은 것처럼 의심하라
그리고 그 의심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해부학자처럼 응시하기
산 채로
6.
또 산 채로 끌려가는 바퀴벌레
다리 뻗는 소리
소리를 물어 뜯는 개미벌
바퀴벌레가 떨어져 나간 다리를
다리처럼 뻗으려 하는 하는 게
아직 살아 있다면
삶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듯이
7.
우리는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갈 권리가 있다
당신은 당신의 가슴을 싱싱하게 하라
8.
집안 어딘가에 숨어 있는 싱싱한 바퀴벌레
9.
산 – 싱싱하게 또 부패하라
10.
혓바늘 : 몸이 혀 밖으로 찔러넣은 인간의 독침
싱싱한 피로 싱싱한 죽음
계간 『황해문화』2024년 겨울호
덩굴
윤종환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네가
놀랐다
한국 학생들의 어휘 수준이
생각보다 높다며
말문을 막았다.
긴 통로를 없애버린 널
만질 수가 없다
너는 네가 닫은 문을 두드리는 사람 같았고
세상으로부터 바깥을 도려낸 듯한 네
습기 먹은 방
데이팅앱에 well-educated 라 써 놓으면
메시지를 더 받아?
― 솔직하게 넌 날 왜 만나러 왔지?
홀로, 멀리, 높이, 또 깊숙이
― 네 등을 좀 토닥여도 될까?
껴안으려 자라는 식물과
무방비로 선 벽의 관계를 생각했다
자라며 자라며
모든 출구를 삼켜버리는 덩굴
세상은 그 다음에야
벌거벗은 통로를 보여줄 것이다
― 벗을까?
서로의 목을 끌어 안고 조금씩 조여 들어갔다
이런 순간엔
어떤 수준의 어휘를 구사하는 게 맞는지 물었으나
너는 동음이의어 사전처럼 조용히
알 수 없는 말로
타오를 벽이 없을 때까지
혀끝의 톱니로
내 몸을 긁으며 생장했다
자신을 안을 수 없도록 설계된 식물의 유전자
자타의 경계를 모르는 본능과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네가
놀랐다
한국 학생들의 어휘 수준이
생각보다 높았다며
혀는 모든 출입구를 봉쇄했다
방비할 언어가
세포 단위로 무너져 내리던 습실
두 입술의 날카로운 무장 해제
반연간 『아토포스』2024년 하반기(겨울)호